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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슈] 포괄수가제 논란 - 드디어 MB에게 박수칠 일이? (12년 6월)
 작성자 : 십시일반
작성일 : 2012-08-15     조회 : 751  



 
 
 
회원 황인갑
 
 
더 이상 MB가 무슨 일을 해도 다 싫고, 여름휴가 가는 것도 꼴 보기 싫은 무조건적인 상황에서 포괄수가제 논란이 터졌다. ‘수술거부’를 걸고 포괄수가제를 반대하는 의사협회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무시하는 이기적 집단이 되었고, 갑자기 정부는 아픈 서민을 염려하는 집행자가 되었다.
 
포괄수가제란 무엇인가. 포괄수가제는 국가가 질환별로 가격을 정해놓고, 병을 고치는 의사에게 정해진 금액을 주는 제도이다. 제도가 시행되면 환자가 치료비 예측을 가능하게 하고, 과잉진료를 통제한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어 여론의 호응을 얻고 있다. 반대의 경우가 현재의 행위별 수가제로, 의사가 진단과 검사, 치료 항목을 추가할 때마다 국가가 보상해 주는 제도를 말한다. 결국, 환자가 자주 병원에 오고, 검사와 수술을 많이 할수록 의사는 돈을 더 많이 벌게 되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보건의료비 지출 증가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 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오는 7월1일부터 백내장, 편도, 맹장, 탈장, 치질, 제왕절개분만, 자궁수술 7개 질병에 대한 진료에 한해서 포괄수가제가 의무적으로 시행된다. 이 질병들은 사실 그동안 선택 참여의 형식으로 80%가 넘는 병원들이 시행해 왔다. 그런데 왜 이제와 의사협회는 반대하는가?
 
낮은 ‘수가’ 때문이다. 값싼 의료비로는 질 좋은 진료를 할 수 없다는 주장과도 연결되어 있다. 현재 건강보험 의료수가가 진료원가의 74% 정도만을 보상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렇게 낮은 수가는 병원들의 비싼 비급여 진료행위를 부추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의 포괄수가제 도입방안에 따르면 다른 질병군의 수가는 10% 안팎으로 오르게 되는데, 백내장만 10% 내리는 것으로 되어, 안과 의사들이 포괄수가제 반대의 선봉에 선 것에 대한 근거로 분석하기도 한다. 결국 제품 단가협상과 같은 문제에 도덕적 명분을 끼워 맞추려다 보니, 주장의 근거가 불충분하고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것이다.
 
한편 논란의 와중에 포괄수가제가 정부의 의료민영화 도입 수순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의사협회는 삼성, LG경제연구소의 보고서를 제시한다. 두 보고서 모두 영리법인 병원에서의 행위별수가제는 과잉진료로 인한 비효율적 경쟁을 양산함을 지적하고, 대안으로 포괄수가제 도입을 주장하였다. 보고서가 현 정권의 ‘의료서비스산업 선진화’추진계획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고, ‘영리병원’을 직접적으로 언급했듯이 포괄수가제가 의료민영화의 한 과정이라는 점은 설득력이 있다. 다른 산업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자본들의 양보 없는 경쟁 속에서 대신 나서 애써 중재도 해주고 룰도 정해주며, 자본들이 무리 없이 챙겨먹을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해 주는 것이 국가 아닌가. 하지만 구더기가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것이 아니듯, 미친 듯이 커지는 의료비에 대한 통제는 필요하다.
 
포괄수가제라는 기술적 제도가 그 자체로 병원비 문제의 해결이 되진 않을 것이다. 환자의 질환을 높은 금액을 받는 질환으로 명목을 바꾸는 등의 편법이 있을 수도 있고, 질병에 대한 포괄수가를 산정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등의 행정적 문제에 부딪힐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관리의 문제이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예민해지고 진보해야 할 것은 의료에 대한 관점이다. 지난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컨베이어벨트 위의 건강’은 포괄수가제 논란과 맞물려 아이러니한 다큐였다. 무상의료체제를 유지해 온 노르웨이가 포괄수가제를 도입하면서 변화되는 의료현장에 대한 다큐다. 각 질병마다 가격이 매겨지면서, 병원수입을 올릴만한 환자(수가를 많이 쳐주는 질병을 가진 자, 합병증 개수가 많은 자)를 유치해야 유능한 직원과 병원이 되는 현실. 환자가 돈을 낼 수 있느냐보다는, 진료가 얼마나 필요한가가 기준이었던 노르웨이의 의료서비스계의 가치가 무너지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한국의 포괄수가제 논란은 의료 행위의 가치를 논하기 보다는 ‘합리적 병원비 찾기’ ‘병원비 낮추기’ 수준의 문제일 뿐이다. 한국은 여전히 가난하면 진료를 제대로 못 받고, 가난하면 빨리 죽는다. 반면 다큐 속 노르웨이의 경우는 대다수 병원들이 기본적으로 공공의료기관인 상태에서 경쟁방식이 도입된 것이다. 한국처럼 병원이 장사치와 같이 극단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장사 잘하는 것이 의료선진화라고 이야기하는 한국에서는 포괄수가제 논쟁으로 의료의 가치를 논하거나, 일희일비할 때가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