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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소풍스케치]동학농민전쟁의 현장을 찾아서~!
 작성자 : 내일은없어
작성일 : 2014-06-01     조회 : 2,717  


올해의 봄소풍은 정읍으로~ 새야새야파랑새야,전봉준 등으로 기억되는 동학농민전쟁의 현장을 찾아갔다. 자그마치 박준성 강사님을 섭외! 유적지마다 고품격 디테일 만땅의 설명을 들으며 "이게 역사기행"이구나를 알게된 순간들이었음.    5월24토욜 아침, 센터 앞에서 출발!11시에 정확히 부안의 백산에 도착하였다. 백산?
일어서면 백산이요, 앉으면 죽산이라!농민군 팔천명이 이 산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한다. 바로 옆에 펼쳐진 평야 멀리서 바라보면, 흰옷입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것이 산을 하얗게 만들었고, 그들이 앉으면 들고 있던 죽창들 때문에 대나무 숲을 이뤘다는...
강사님은 백산의 팔천농민들이 저 평야를 바라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를 물었다. 피땀흘려 농사를 지어도 내 것이 아닌 곡물..그것을 되찾는 꿈은, 배부름에 대한 욕망이기도 하고, 자신들의 노동을 더 이상 빼앗기지 않겠다는 깊은 "한"이기도 할 것이다.    유난히 더웠던 백산에서 내려와 만석보터로 향했다.
농민들의 봉기에 직접 원인이이었던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욕의 상징! 농민들의 강제노역으로 만든 만석보를 통해 물세까지 과하게 걷어버리니, 만석보만 보면 이를 갈 수 밖에. 관아를 점거한 농민들은 이 터에 있던 만석보 먼저 부숴버렸다.   
 밥은 하늘이다. 백반이 이렇게 푸짐한 건 전라도의 특색인 듯.
식당 바로 옆 말목장터. 농민들의 최초 봉기장소. 시장바닥이야 말로 서민들의 입이 모이고 원성이 모이는 곳! 그 한가운데 있던 원래 감나무는 태풍 매미에 스러졌고, 보이는 감나무는 대역ㅋㅋㅋ    배를 채운뒤 찾아간 곳은 황토현 전적지.농민군이 정규군 수천명을 격퇴시킨 최초의 승전 장소이다.
그곳에 세워진 황토재 갑오동학농민혁명기념탑."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했던 신채호 선생님은, 후손들이 역사를 어떻게 기리고 있는가를 보며, 울화통이 터지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박준성 강사님의 "미학"을 곁들인 설명은 개인적으로 이번 역사기행의 백미였다.    양반 상놈 없는, 위 아래 없는 새 땅을 꿈꿨던 농민들에게 중앙높이 솟은 거대한 탑이 어울릴까. 이런 모양새의 탑은 19세기 군국주의 시대에 열강들이 국가주의를 강화하며 유행한 것이라한다. 국가와 영웅을 민중들이 "우러르고 따라야함"을 선전한 조형물인 것이다. 박정희정권 때 세워진 이 탑은, “전봉준 선생의 영도아래에서”일어났고,“국민생활의 근대화”를 촉진시켰다고 명문을 새기며, 영웅사관과 5.16군사쿠데타 이후 "근대화론"의 영향을 담고 있다.   

황토현전적지 정화기념비.1980년 전두환 정권은 민간단체인 정읍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를 강제 해체시켰다. 지역의 자율 활동이 정권비판으로 활성화되지 않도록 관 주도로 사업화시킨 것이다. 이 기념비엔 "전두환 대통령의 유시"로 "정화"하였다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방문한 사람들이 종종 "전두환"이름을 돌로 찧어진 것이 깨알같이 티난다.tip: 기념비등에 "민족중흥"이란 단어가 들어가면 박정희정권, "정화"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전두환정권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보면 된다고 한다.   
황토현전적기념관 옆 전봉준 장군 동상.김경승이란 우리나라 동상제작 최고의 권위자가 만들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교육받은 그는, 친일작가로 분류되었으나 각종 기념조형물제각을 독차지했다.김유신,안중근,김구,안창호,세종대왕,이순신 동상들을 만들었으며, 4.19때 무너진 이승만,자유공원의 맥아더,친일행적이 있는 김성수,김활란,윤치호 등의 동상도 그가 만들었다.그래서 우리나라의 유명한 동상들의 표정이나 제스처가 다 비슷하다. 인물에 대한 가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낙찰된 건 다 만든 사람;;   
전봉준의 생가(고창)는 아니고, 살던 집.   

동학농민혁명모의탑.봉기를 모의한 사발통문(주동자를 모르게 하기위해 원형둘레로 이름을 씀)이 발견된 마을입구에후손들이 세웠다.   
무명동학농민군위령탑.역사기행의 마지막 장소이자, 개인적으로 기념물이 그 자체로 감동을 담을 수 있음을 느낀 탑. 관 주도가 아니라 시민단체와 지역 주민들이 성금을 모아 만들었다. 주탑은 하늘을 찌를 듯 높지 않으며, 민중판화의 형식으로 이미지가 새겨져 있다. 주변의 작은 보조탑들은 무엇일까. "밥이 하늘이다"를 상징하는 밥그릇, 농민군들의 얼굴, 무기로 썼던 농기구들을 새겼다. 산자의 얼굴은 매끈하게, 죽은자의 얼굴은 거칠게 하여 투쟁 속의 삶과 죽음 앞에 사람들을 숙연하게 한다. 탑 끼리의 공간을 만들어놔, 돌아다니며 쓰다듬고,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할 수 있다. 박물관액자 속 역사가 아니라, 우리 삶의 가까운 역사이길 바라는 것이다.   
 더웠고,멀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되새기는 감동이 훨씬 컸던 하루였다. “동학농민운동=전봉준”으로 끝났던 글씨가 아니라, 현장에서 당시의 농민군이 된 느낌으로 돌아다닌 하루는, 몸으로 배운다는 것이 뭔지를 느끼게 했다. 다음엔 더 많은 회원들이 이 감동을 함께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