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돌아가신 최고은 선배님의 같은과 학교 후배입니다.일주일 쯤 전인가, 학교 동기에게 선배가 집에서 홀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무슨 사정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는데 오늘 기사를 보고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네요.정말 눈물만 나고 그동안 참으며 쌓아왔던 이 영화 바닥의 모든 서러움과 화가 한꺼번에 터지는 순간이었습다.최고은 선배님, 아마 자신의 첫 시나리오 계약 후 엄청난 꿈에 부풀어 오르셨을 겁니다. 정말 열심히 쓰셨을 겁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돌아온 건 계약금 중 일부인 몇백만원정도가 고작이었겠죠. 몇주, 몇달, 몇년, 그렇게 기약없는 시간은 흘러만 갑니다. 하지만 캐스팅과 투자가 확정되어 영화가 들어갈 때까지 받아야 할 남은 돈은 주지 않습니다. 회사에서 나가고 싶어도 자신과 자신의 시나리오는 말도 안되는 계약 때문에 이미 회사에 묶여습니다. 일은 계속 하지만 돈은 받지 못합니다. 생활이 힘듭니다. 몸이 아픕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까요? 저는 이 글을 쓰면서 사실 참 부끄럽게도 걱정이 앞섭니다. 혹시 이 글이 크게 퍼져 해당 제작사쪽의 귀에 들어가면 제 앞길에 방해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저 역시 감독을 꿈꾸는 사람이니 말이죠.하지만 정말 말해야 겠습니다. 음악과 방송계의 어두운면에 가려져 있던 이 영화판의 더욱더 말도안되는 횡포들을요.이제부터 다른 한 제작사의 사실적인 예를 들지요.작년에 유명한 미남 주인공이 톱으로 나와 엄청난 흥행을 일으켰던 한 영화가 있습니다. 600만이 넘어간 영화입니다. 아마 100억은 벌었을 겁니다. 근데 그 제작사의 횡포, 아주 대단했습니다.제 지인이 그 영화 스탭이었죠. 처음에 그 제작사가 3달에 800만원 주겠다고 하며 계약했다고 합니다. 근데 몇주 뒤 갑자기 말을 바꾸더니 4달로 연장하자고 바꾸더래요. 한달은 봐줄수도 있겠다 싶어 그냥 같은 돈에 계약했습니다.근데 이게 웬걸 촬영은 5개월, 6개월로 늘어납니다. 처음에 3달에 800만원 했을땐 많아보이죠? 근데 그 추운 겨울날 맨날 밤 꼴딱 새고 일어나자마자 새벽같이 출근하고 야근수당도 안주고 촬영은 날로 늘어갑니다. 더군다나 저 800만원 받은 분은 기술스탭이라 그나마 많이 받은거구요, 일반 연출부나 제작부는 저 돈의 반도 못받을 겁니다. 안되겠다 싶어서 스탭들이 추가계약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근데 그 제작사 대표, 배짜라는 식으로 돈 안주더랍니다.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둬라, 다른 애들 뽑아서 돈 주겠다고 하더랍니다. 도대체 그건 무슨 논리입니까? 일 계속 하던 사람 돈 주고 쓰면 되지 왜 다른 사람 새로 뽑아서 돈 주겠다고 할까요? 스탭들이 저렇게 쎄게 나오다가도 결국 참고 돈 안받으며 일할거 뻔히 알기 때문입니다. 위에서도 제가 두렵다며 이야기 했지만 스텝들 제작사 눈치 엄청 봅니다. 나중에 일거리 안들어오면 큰일이거든요.아무튼, 지금 당장 돈이 없어서 돈 못준다 칩시다. 그러면 나중에 영화 개봉하고, 흥행해서 수입 생기면 그때 추가로 주겠다는 계약서라도 써야되는거 아닙니까? 그 영화 40억인가 50억 정도 제작비 들여서 600만 넘게 들었습니다. 순수익만 100억에 가까울 겁니다. 근데 돈도 제대로 못받고 일한 스텝들, 떨어지는 돈 단돈 만원이라도 있을까요? 없습니다.600만 넘었을때 제작사가 스텝들 모아서 파티 했다고 합니다. 그 영화제작사 대표 싱글싱글 거리며 돈 떼먹은 스탭들 테이블에 낯짝좋게 앉아서 수고했다고 말했더랍니다. 다들 무시하고 쌩깠다죠.이게 영화판의 기본입니다. 하지만 모두 참고 일합니다. 꿈 때문이죠. 남의 꿈 밑져서 생노동 시켜먹고 횡포부리는, 한마디로 사x꾼들 입니다.뭐 처음부터 저예산으로 시작한 영화라 인정상 돈 조금 받고 일하는건 충분히 인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중에 큰 수익이 났을 경우엔 그만큼 돌려줘야 하는거 아닙니까?하지만 그냥 관례니까, 원래 그랬으니까, 하고 스탭들 뛰엄뛰엄 보고 줄것도 안주는 제작사나 투자사들 진짜 참을 수가 없습니다.영화일은 돈도 잘 안 모입니다. 목돈 한번 받고서는 다음에 들어 올 일거리는 기약이 없습니다. 돌아가신 최고은 선배처럼 가족, 지인 없이 어디 아프기라도 하면 정말 끝 입니다.할리우드는요, 평생 카메라 포커스 맞추는 일만 해도 걱정없이 먹고 산다고 합니다. 물론 영화 시장이 크니 말이 되는 얘기입니다.근데 우리가 뭐 그런거 바랍니까? 일한만큼만 받을 수 있길 바라는 거지요. 영화 스탭들은 일반 기업들 처럼 노조 만들어서 파업같은 것도 못합니다. 먹히지 않으니까요. 헝그리 정신으로 이 바닥에 보수없이 뛰어드는 사람들은 넘치고 넘칩니다.물론 개념찬 제작사도 분명 있겠죠.하지만 대부분이 이런 현실이고, 이런 대우와 수익구조를 당연하게 여기는 이 바닥을 우리는 떠나고 싶어도 못 떠나겠습니다. 그놈의 꿈 때문에요.사실 감독과 배우들은 아무 힘이 없습니다. 이들을 욕해선 안됩니다. 제작사와 투자사가 문제입니다.많은 분들이 부디 이 어려운 현실을 알고 영화를 즐겨주었으면 좋겠네요.여러분이 보시는 한국의 모든 영화들, 이렇게 제대로 된 대접도 못받으며 뒤에서 일하는 수십명의 스탭들이 몸 바쳐 만드는 영화 입니다. 이런 글을 쓴다한들 달라지는건 없겠죠.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못다 핀 꿈을 안고 홀로 생을 마감하신 선배님의 마지막은 얼마나 슬프셨을지, 외로우셨을지, 감히 제가 상상도 할 수가 없습니다. 선배의 죽음이 물론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분명 선배가 속해있던 위와 같은 사회 구조의 문제가 더 컸다고 봅니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따지며 책임을 묻고 싶네요. 정말 뭐라 말을 이으며 이 글을 마무리 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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